속이 비었다고 다 보압은 아니다
두꺼운 벽 이면에 얕은 함몰이 앉아 있다. 아니면 부품을 잘랐을 때 안에 빈 방 하나가 들어 있다. 손이 먼저 나간다. 보압을 올린다. 몰드닥터도 사진을 받으면 대개 그쪽을 먼저 짚는다. 그리고 그게 맞을 때가 많다. 그런데 어떤 자국은 한 교대 내내 보압을 올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어떤 건 올릴수록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틀린 답이 아니다. 정말로 진공 보이드라면 보압을 올리고 보압시간을 늘리는 게 맞다. 굳는 동안 안쪽을 계속 채워 넣어야 하는 자국이니까, 그건 교과서가 옳다. 나도 현장에서 그렇게 잡는다. "속이 비었으면 보압을 올려라"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진공 보이드엔 맞고, 가스 기포엔 틀리다. 유일한 헛디딤은 속이 비어 보이는 모든 자국을 한 가지 처방으로 메울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어떤 공동은 채워서 될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안 생기게 할 일이다.
먼저 세 갈래로 가른다
첫 갈래는 간단하다. 자국이 표면에 앉았느냐, 속에 들었느냐. 표면이 얕게 꺼진 거면 싱크마크다. 두꺼운 벽이나 리브나 보스 이면을 손끝으로 쓸어 보면 걸린다. 속이 비었는지는 겉만 봐선 모른다.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수지면 빛을 비춰 본다. 안에 그림자 같은 방이 뜨면 공동이다. 불투명하면 아깝지만 하나를 갈라 본다. 단면에 빈 방이 있으면 진공 보이드거나 가스 기포다. 여기까지가 첫 칼이다. 함몰과 공동을 갈라 놓는다.
공동으로 갈라졌으면 둘째 칼을 댄다. 갓 뽑은 부품을 하나 집어 살짝 데운다. 뜨거운 물에 담그거나 열풍을 잠깐 쐬는 정도면 된다. 진공 보이드는 더 꺼진다. 안이 비어 있으니 물러진 스킨이 진공 쪽으로 더 빨려 들어간다. 가스 기포는 반대로 부푼다. 갇힌 기체가 열을 받아 팽창하면서 껍질을 밀어낸다. 여기서 갈린다. 보조 단서도 같이 읽는다. 두꺼운 부위나 리브, 보스가 두꺼운 데 앉았고 수축이 큰 결정성 수지면 진공 보이드 쪽 확률이 올라간다. 잘 마르지 않는 수지를 덜 말리고 돌렸으면 가스 기포 쪽으로 기운다.
왜 하나는 보압을 되받아치나
진공 보이드부터. 두꺼운 벽에 결정성 수지를 밀어 넣으면 금형에 닿은 겉이 먼저 굳는다. 껍질, 스킨이 먼저 자리를 잡는다. 안쪽은 아직 뜨겁고 아직 줄어드는 중이다. 겉은 이미 단단해서 따라 줄지 못하니, 줄어드는 안쪽이 갈 데가 없어 제 살을 잡아당긴다. 그 자리에 진공으로 빈 방이 생긴다. 그래서 레버가 보압이고 보압시간이다. 겉이 완전히 굳기 전에 안쪽으로 수지를 더 밀어 넣어 그 수축을 메운다. 게이트를 두꺼운 부위 쪽으로 두는 것도 같은 이야기다. 마지막까지 녹아 있는 길을 열어 두어 보압이 안까지 닿게 한다. 이건 채워서 이기는 자국이다.
가스 기포는 정체가 다르다. 여기 빈 방은 수지가 못 채워서 생긴 게 아니라, 뭔가가 안에서 부풀어서 생긴 거다. 덜 마른 수지가 물고 들어온 수분, 딸려 들어간 공기, 열에 날아가는 휘발분. 이것들이 배럴 안에서 열과 압을 받아 기체가 되고, 식으면서 포켓으로 남는다. 그러니 레버가 다른 데 있다. 첫째는 건조다. 흡습하는 수지는 제대로 말려서 애초에 물을 안 물고 들어오게 한다. 둘째는 탈기다. 배압을 조금 올려 스크루가 녹은 수지를 이기며 가스를 앞으로 밀어내게 한다. 백압이 아니라 배압이다. 셋째로 감압, 노즐 후퇴를 살핀다. 감압이 과하면 노즐 끝으로 공기를 되레 빨아들여 없던 기포를 만든다. 그러니 지나친 감압은 줄인다. 여기에 대고 보압을 올리는 건 엉뚱한 데를 겨누는 일이다. 채울 게 없는 자국을 채우겠다고 미는 것이고, 건조가 문제였다면 그 문제를 압으로 덮어 버린다.
이 갈래가 어긋나는 곳
이 갈래도 헛짚을 데가 있다. 몇 개만 적어 둔다. 수분에서 온 기포에 보압만 계속 올리는 것. 자국은 잘 안 지고, 그러는 동안 진짜 원인인 건조는 손도 안 댄 채 덮여 버린다. 감압을 겁 없이 키우는 것. 보이드 잡겠다고 노즐 후퇴를 늘렸다가 공기를 빨아들여 있던 문제에 기포를 하나 더 얹는다. 표면 싱크를 속 보이드로 잘못 읽는 것. 겉만 꺼진 자국을 안이 빈 걸로 보고 엉뚱한 칼을 대면 첫 갈래부터 틀린다. 마지막으로 유리섬유 강화 수지. 탈기 좋자고 배압을 함부로 올리면 섬유가 부러진다. 여긴 살살 간다.
그래서 입력이 함몰이나 빈 방이면, 몰드닥터는 보압으로 손을 뻗기 전에 이 갈래부터 돌린다. 표면이냐 속이냐, 데우면 꺼지냐 부푸냐, 어디에 어떤 수지로 앉았냐. 몰드닥터는 불량 사진과 공정 세팅을 받아 유력한 원인과 조정할 것을 추정한다. 답을 대신 확신해 주지는 않는다. 다만 매 런을 기록해 두면, 우리 공장에서 어떤 자국이 어떤 조건에서 나왔는지가 이력으로 쌓인다. 다음에 같은 자국을 만났을 때, 처음부터 다시 세지 않아도 되게.